[폭삭 속았수다] '살면 다 살아져'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보신 분들은 보시고 오셔요~]
애순이 엄마 광례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으러 같이가자고 전남편의 어머니였던(시어머니) 애순이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어머님 어디좀 같이가죠...저 무서워서 혼자는 못가겠어요'
자신보다 나이든 어머님을 모시고, 영정사진을 찍으러 가는 그마음을..
그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 까요?
시어머니는 말없이 치마를 걷어올리고 속곳주머니에서 거의 다쓴 루즈를 꺼내어 며느리의 입술에 연분홍빛 루즈를 발라줍니다.
'곱게하고 가야지~ 자식들이 길이길이 기억할 사진인데...' 하시며
니 먼저 찍고 나도 찍자..하십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말합니다.
"나죽고, 어머니는 늦게 늦게 오셔, 우리 애기들 크는것도 보고 나중에 나중에 오셔. 내가 먼저 가서 애들아빠 만나고 있을께요"
자식도 여의고, 며느리까지 먼저 보내는 시어머니는 가슴으로 웁니다.
자신이 결혼예물로 해온 옷을 입고 (내게 있는 가장 좋은 옷이라던) 영정사진을 찍고 돌아온 광례는
잠든 애순이를 동생들 소리 안나게 깨워 그날 잡은 전복을 화로에 구워줍니다.
애순이는 '아침에 구워주지~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깨워서 줘~' 물어봅니다.
엄마는 애순이에게 ' 낮에는 동생들이 다 뺏어먹으니' 라고 말합니다.
광례는 일전에 남편에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족들 모두가 자신의 등의 지게에 올라타 자신을 식모처럼 부리며
자신의 덕을 보고 살아가려해서 모든 짐을 혼자 이고 살아왔는데
애순이 이것은 혼자 지게에서 내려와 자꾸 자신의 짐을 같이 나누어 지자고하니...
이것이 웬수가 아니면 뭐겠냐고 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같이 짎어지고 싶어하는 어린 애순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알고, 똑똑한 애순이가 엄마는 못내 밟혔던 겁니다.
그런 애순이에게 엄마는 마지막으로 딸이 전복이 다가 아니라 네가 제일이다라고 생각할수있게 전복을 구워주며 말합니다.
'팔면 100환이지만 니입에 들어가면 그게 1000환이야. 니 입에 들어가는건 하나도 안아꼬워'
그러고는 전복을 먹는 애순이 옆에서 봉숭아물을 돌로 짓이겨 꽃물을 만들고 애순이의 손에 꽃물을 들여주며
유언을 합니다.
엄마 죽거든 무조건 너는 이집을 나가서 작은아버지댁에 얹혀 살으라 합니다.
눈치밥이야 먹겠지만 돈은 있으니 학교는 다니게 해줄거라고요.
지금 엄마가 떠나고 나면 한량 새아빠와, 핏줄다른 동생들을 키우느라 식모살이를 하게될까 두려운 엄마는 신신당부를 합니다.
아홉살 애순이는 그것이 엄마의 유언이라는 것을 알고 '더 말하지 말라' 합니다.
이럴려고 나 전복 구워 주는 거였냐고 웁니다.
그러자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살다 살다 너무 힘이들고 힘들면 뭐라고 하라고 합니다.
몸이 고되면 마음이 엄살을 못해
살다가 살다가 똑 죽겠는 날이 오거든
가만 누워 있지 말고 죽어라 발버둥을 쳐
이불이라도 끄내다 밟어
밭 갈아엎고 품이라도 팔러 나가
'나는 안죽어, 죽어도 살고야 만다'
죽어라 팔다리를 흔들면 꺼먼 바다 다 지나고
반드시 하늘 보여, 반드시 숨통 트여
두고 봐라. 요 꽃물 빠질 즈음 되면
산 사람은 또 잊고 살아져. 살면 살아져
손톱이 가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
엄마의 이 말은 애순이가 살아가며 힘들때마다 자신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사람에게 하는 말이 됩니다.
'살면 살아져~ 산사람은 다 살아져'
남들이 했다면 그냥 하는 위로지만
애순이는 엄마를 잃고 살아져가는 삶을 살아본 사람입니다.
똑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와도, 엄마 말처럼 살아지던 삶을 살아낸 경험에서 온 위로였던 겁니다.
저도 어릴적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저희 외할머니가 저희 상가집에 오셔서 대성통곡을 하십니다.
"죽은놈이 아깝지, 산사람은 다 살아지는데 죽은놈이 아깝지, 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져'
어린 딸을 두고 가는 사위가 미워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면서도 뒤돌아 앉으면서 산사람은 살아진다고. 어떻게는 살아진다고, 제 명을 다 못하고 죽은 애비가 애달프다 하셨습니다.
애순이 엄마가 한 말은 심리학적으로도 논리적인 말입니다.
괴로움에 메몰되기보다는 신체를 움직이는것이 애도와, 우울증을 이기는 묘약입니다.
저도 힘든날이 있을때면 이불이라도 빨고, 대청소라도 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몸을 쓰다보면 몸이 노곤해지고
몸이 노곤해진채로 잠이 푹 들고나면 머리가 말끔해진 경험을 합니다.
그러면 또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습니다.
우리도 모두 우리의 어려운 시기들을 또 살아낼것입니다.
애순이가 그러햇듯
우리는 또 살아지는 삶을 오늘도 살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