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01. 전지적 2002년 스타벅스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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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커세상

커피01. 전지적 2002년 스타벅스 관점

by jejetiti 2024.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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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하면 스타벅스?

출처: 스타벅스로고 변천사 / 2002년 스타벅스 로고

 
 

2002년 8월 가장 뜨거웠던 여름

대한민국에 입국한 '미쿡스타일 커피매장' 스타벅스 광화문점을 정복하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스타일은 어때야할까?

라는 고민부터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아~뭬~리칸 스타일 이어야 할 것 같아서

커다란 캔버스 숄더백을 한 쪽 어깨에 메고

중간사이즈의 어려워 보이지만 읽을 법한 책 하나 겨드랑이에 끼고

흰 반팔티에 쫙 달라붙은 청바지에 검정색 구두를 신으면

프렌즈에 나오는 레이첼 스러워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출처:https://www.elle.co.kr/article/42908 엘르 / by ELLE 2019.10.29

 

출구도 찾기 어려운 지하철을 타고

시청에서 내려 정동극장을 지나 광화문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스타벅스 광화문 매장이 있었다.

2002년에 갓 오픈한 광화문 매장이 우리나라에 얼마 없는 스타벅스 매장 중 하나였다.

 

매장과 가까워질수록 압도적인 초록매장의 크기에 압도되었다.

잡지에서나 보던 서양식(?) 매장 분위기와 고급스러운 외관에 살짝 기가 눌렸다.

시골에선 지하이거나 2층에 있던 커피숍이 1층에 그것도 모두 통유리로 되어있다.

어두침침하고 담배연기 가득하던 내가 알던 커피숍은 확실히 아니었다.

 

오전10시 주말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대부분은 손잡이가 달린 나무문을 열면 딸랑거리던 시골의 커피숍과 다르게

대형현관문크기의 유리문을 힘껏밀고 들어서야 했던 데 부터 나는 위화감이 들었다.

기죽지 않기위해 속으로 되뇌었다

'촌스러워보이지 않게, 촌스럽지않게..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들어서자 마자 빠르게 매장을 스캔했다 1층은 자리가 거의 차있었고

카운터 앞으로 6~7명이 줄을 서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카운터 너머로는 말끔한 초록유니폼을 입은 서울티 팍팍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6~7명의 주문방식을 보면 나도 뭔가 생각을 정리 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보고있지 않음에도 한껏 촌스러워 보이지 않고, 당당해 보이도록  보폭을 크게 구두소리를 또각거리며 줄 뒤에 가서 섰다.

 

그런데 왠걸...

직원의 소리는 잘 들리는데 주문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주문하는지 배우려고 했던 나의 눈치밥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리고 직원뒤로 보이는 간판형 초록칠판 메뉴판에 빼곡히

적힌 메뉴는 또 왜그렇게  많은가? 심지어 아는 단어가 없다.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에  내 순서는  빠르게 돌아왔다.

 

점원 앞에 섰지만 내가 아는 커피의 메뉴가 하나도 없다.

도대체 저 말들이 뭐란 말인가.

블랙커피, 설탕커피, 믹스커피 아냐?

(이럴 땐 뭐다?)

메뉴 중에 가장 베이직한게 제일 처음 나오는 법이니까

메뉴판 좌측 맨 첫번째 칸에 있는 메뉴가 거장 많은 사람들이 시키는 메뉴일 것이다.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할거냐 물었는데 그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서 '우아하게' 괜찮다고 했다

뜨거운 물도 드릴까요?라고 묻길래 '오~ 물주면 좋지 싶어서' 그러라고 했다.

그러자 영수증을 건네주며 주문이 끝났으니 픽업대로 이동하라고 했다.

 

내 앞에서 주문한 분들이 자신의 번호가 불려지면  쟁반에 커피를 담아서 이동을 했다.

아니 번호를 알려줬어?

내 번호는 뭐지? 어디서 번호를 확인하지????

당황해서 심장이 쿵쾅거리는데도 태연하고 느리게 시선처리를 하며 사람들을 주의깊게 지켜보니 영수증을 보고 자리를 뜨는 것 같아서 나도 영수증을 보았다.

아~ 이 번호가 내 번호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평정심을 회복했다.

 

다른이들이 주문하고 받아 든 쟁반에 담긴 머그잔 또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들을 지켜보며 나도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내 번호가 불려지고 점원이 영수증의 내 번호를 확인하고 내쪽으로 밀어주는 갈색 쟁반에는 경악 할 무엇인가가 올려져 있었다.

이상한나라 엘리스가 소인국에 떨어졌을 때 마셨을 법한 새하얀 미니 커피잔에 진눅한 새까만 커피

그리고 흰색 머그잔에 뜨거운 물이 담겨있었다.

2024.06.09. 돌핀커피오마카세 in 송도

 

순간 당황한 나의 눈은 허공과 주변을 빠르게 훌텄고 다른사람의 쟁반과 나의 쟁반을 번갈아 보며

이게 정말 내것이 맞는가? 주문이 잘못된 건 아닌가?

뭔가 헷갈린게 아닌가? 

오만가 생각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팔을 내밀어 쟁반을 내앞으로 끌어당겨 창가 쪽에 있는 낮은 바로 걸음을 옮겼다

속으로 외쳤다

'젠장 젠장 빌어먹을, 미쳤어 미쳤어 나 뭐한거지?

이게 뭐란말인가?'

 

창가에 도착하기전에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장면이 떠올랐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오드리햅번이 노상카페에서 에스프레소잔을 들고있는 모습

'아..내가 그 커피를 시킨 모양이군'

흠..그래 그럼 나도 오늘은 레이첼말고 오드레햅번하지 뭐

 

출처:티파니에서아침을 장면중 스틸컷

출처: 티파니에서아침을 장면 中
출처:티파니에서아침을 장면중 스틸컷
출처:티파니에서아침을 장면중 스틸컷

                      

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바에 옆으로 기대어 앉은 채 다리를 한쪽 꼬아올리고

한쪽 팔을 다리에 괸 채 에스프레소잔을 들어올려 입가에 한모금 흘려보냈다

말하지 않아도 미간이 찌푸려지는 맛이었지만

미간을 좁히지 않기위해 애써가며 음미해 나갔다.

서둘러 마시고 일어서면 없어보일까봐 아주 천천히 나누어가며 마셨고

따뜻한 물의 필요성에 골백번 공감하는 커피타임을 가졌다

 

 


이것이 나에게 첫 스타벅스였다.

 

누구에게든 처음이 있듯

나의 커피세계는 사실 여기서 부터 시작했다.

 

나는 스타벅스의 구수한 탄누룽지맛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의 에스프레소가 나를 커피의 세계로 인도했음을 애써 부인하진 않으려 한다.

이 날을 계기로 나는 커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커피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단

서울놈처럼 보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었다고 봐야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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